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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상등 켜진 유럽 안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종횡으로 다시 쓰는 세계 질서 속에서 유럽은 악몽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러시아 손을 잡고 시동 건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새 보안관이 왔다”며 유럽 민주주의에 훈계를 늘어놓은 뮌헨안보회의,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공개 면박 준 백악관 정상회담…. 불과 보름 사이 줄줄이 벌어진 사건이 뜻하는 바는 명확하다. 유럽이 미국에 안보를 크게 의지하는 시대는 끝났다. 대서양 동맹의 ‘균열’을 넘어 ‘종말’까지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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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된 대서양 동맹, 뿌리째 흔드는 트럼프
지난 80년간 유럽의 안보는 미국이 주도하는 집단안보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책임졌다. 나토를 주축으로 한 대서양 동맹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질서와 방어를 도모하고 대소련 공동 전선으로 기능해왔다. 이 체제는 우크라이 상가중개 나를 등지고, 러시아를 국제무대로 복귀시키려는 행보를 본격화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한 달 만에 뿌리째 흔들리게 됐다.
대서양 동맹의 파열음 자체는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 무임승차론’을 꺼내 들고 나토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하지만 미·러가 2차 세계대전 이래 전례 없는 수준 개인대출 으로 밀착하는 데다, 유럽연합(EU)을 향해 “미국을 뜯어먹으려 생겨났다”라고까지 적대감을 드러낸 최근 상황은 8년 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하던 중 설전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 목돈모으기자동차 합뉴스
예상보다 본격적이고 빠른 전개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유럽 국가들은 ‘유럽 안보 자강’ 논의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유럽의 안보는 유럽 스스로 책임지라고 압박하는 상황에서 안보 홀로서기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해진 것이다. “역사의 갈림길에 선 유럽은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키어 스 우리은행 자유적금 타머 영국 총리) “유럽이 미국에 종속돼선 안 된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자유 세계에 새 지도자가 필요하다”(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 등 최근 유럽에선 불안과 조바심이 뒤섞인 격앙된 반응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없는 유럽 안보’ 구상은 데탕트(긴장 완화) 분위기를 기점으로 줄어든 군사력을 끌어올려 자체 방어 능력을 갖추는 게 일차적 목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거의 성장하지 않고 스스로 방어하거나 (군사력·경제력을 기반으로 한) ‘하드파워’를 보여줄 수 없는, 빚이 많은 고령 대륙이라는 게 유럽이 직면한 현실”이라며 “유럽의 구질서는 무법 시대에 ‘하드파워’를 행사하는 법에 대한 벼락치기 과외가 필요하며, 그게 아니라면 신세계의 무질서에 희생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광장에 마련된 임시 추모식에서 미국 국기와 우크라이나 국기가 꽂혀있다. AFP연합뉴스
‘재무장’ 갈 긴 먼 유럽…첫 발 뗏으나 10년 걸릴 수도
문제는 낮은 수준으로 유지돼온 유럽국가의 군사력을 단기에 끌어올리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영국의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2025 군사력 균형’을 보면 작년 한 해 유럽의 나토 회원국 전체 국방비(4570억달러)를 합쳐도 미국의 국방비(9680억달러)에 한참 뒤쳐지는 수준이었다. 러시아의 지난해 국방비(1459억달러)도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환산하면 4620억원으로, 유럽의 나토 회원국 국방비 총합계를 웃돌았다. 러시아의 국내 투자 비용이 낮고 국내 생산이 우세한 상황을 고려하면, 물가와 환율을 반영한 PPP기준으로 국방비를 환산해 살펴보는 게 유용하다고 IISS는 설명했다. 유럽의 나토 회원국 국방비 평균은 GDP 1.99% 수준인데, 트럼프 정부는 이를 3~5% 수준까지 늘려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 도움 없이 유럽이 자력 방어체계를 갖추려면 10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벨기에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브뤼헐은 전시에 예상되는 미군의 기여를 대체하려면 최소 전차 1400대, 보병 전투차량 2000대, 대포 700문 등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이는 현재 프랑스·독일·이탈리아·영국 지상군을 합친 것보다 많은 수준으로, 역량 격차를 해소하려면 유럽은 연간 2500억 유로(GDP의 약 3.5%)를 추가로 지출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보나 방공망을 미국의 군사 지원에 크게 의존해온 유럽은 독자적으로 군사 작전을 수행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대서양 동맹 내 역할 분담에서 미국이 군의 정교한 시스템과 응집력 제공을 전담해왔기에 유럽으로선 방위비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이런 역량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그간 전쟁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올린 전과 일부도 미국의 정보 지원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짚었다. 미군의 정보 협력은 러시아군 표적을 식별·타격하는 우크라이나 군사 능력에 핵심으로 여겨지는데,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정상회담 파행 이후 무기 지원에 이어 정보 지원까지 중단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에 따라 유럽 정상들은 미국의 “강력한 후방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하는 동시에 안보 홀로서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4일 EU 회원국 방위비 증액을 촉진하기 위해 최소 8000억유로(약 1229조원)의 자금 동원 방안 등을 담은 ‘유럽 재무장 계획’을 제안했다. 개별 회원국이 국방 부문에서 공공자금을 적극적으로 동원할 수 있도록 EU 재정준칙 적용을 유예하는 국가별 예외조항을 발동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좌)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우)이 2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마친 후 포옹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핵우산론 펼친 프랑스…한목소리로 뭉칠 수 있을까
마크롱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주장해 온 ‘프랑스 핵우산론’도 또 다른 방안으로 떠올랐다. 최근 독일 총선에서 승리해 유력한 차기 총리로 부상한 메르츠 기독민주연합(CDU) 대표가 유럽의 자체적인 핵 억지력 강화를 논의해야 한다며 독일의 전략적 변화를 예고하자 급물살을 탔다. 마크롱 대통령은 5일 “유럽의 동맹국 보호를 위한 핵 억지력에 대해 전략적 대화를 시작하기로 했다”면서 “미국이 우리 편에 남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위협은 우크라이나를 넘어 유럽에도 손을 뻗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관찰자로 남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마크롱 대통령은 강조했다. 현재 유럽에서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는 프랑스와 영국뿐이다. 미과학자연맹에 따르면 두 나라는 각각 핵탄두 291기, 255기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핵무기 약 88%는 미국과 러시아가 보유 중이다.
여러 논의가 오가지만 유럽 차원에서 곧바로 한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방위비 확대나 평화유지군 파병 등은 막대한 비용이 뒤따라야 해서 각국 정상에 적잖은 정치적 부담이 되는 데다, EU 내 국가들이 처한 정치·경제적 상황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EU에 예고한 전면적 관세 부과가 현실화해 경제에 심각한 타격으로 이어진다면 방위비 지출을 늘리기 더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유럽을 이끌 마땅한 구심점이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목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조기 총선에서 참패해 사실상 레임덕에 빠졌고, 독일은 3년 만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게 되면서 정권교체기에 놓여있다. 그나마 정치적 부담이 덜하다는 평가를 받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최근 주도적 역할을 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유럽 대통령’으로도 불리며 집권 1기 트럼프 대통령에 맞섰던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에 비하면 무게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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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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